1.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조항이란
투자자가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신주를 인수하게 되면 투자자는 주주의 지위를 갖게 되고, 이사 등 임원으로 선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큰 금액을 투자한 투자자로서는 회사의 경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독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에 실무상 투자자가 회사에 투자하면서 체결하는 신주인수계약서에는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회사와 경영진이 투자자와 사전에 협의하거나 동의를 얻도록 하는 조항(이하 ‘사전동의권 조항’)이 포함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회사나 경영진이 투자자에게 손해배상이나 위약벌을 지급하거나 투자자가 보유하는 주식을 다시 매수하도록 하는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조기상환청구권과 같은 제재수단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무효로 본 고등법원 판결
투자자 A 와 B회사, 대주주 C는 2016년 12월경 투자자 A가 B회사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이하 ‘대상주식’)를 인수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회사 B가 신주발행(유상증자)을 하는 경우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투자자 A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투자자 A는 B회사의 대상주식을 인수한 이후인 2018년경 B회사가 투자자A의 사전 서면 통지 및 동의 없이 2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하고, 투자자A의 시정조치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투자계약에 따라 B회사 및 대주주 C가 연대하여 대상주식에 대한 조기상환을 청구에 따른 상환금과 위약벌을 지급할 것을 청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등법원은 이 사건 투자계약에 규정된 사전동의권 조항과, 이를 이유로 한 조기상환 및 위약벌 조항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보아 투자자 A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주주평등의 원칙이란 주주가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상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주식이 회사에 대한 전체 주주로서의 권리를 균일한 크기로 나눈 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종류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회사에 대하여 서로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나라 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을 신주발행, 이익배당, 자기주식 취득이나 주식병합과 자본감소 등 주식회사 법률관계 전반에 적용되고, 이에 위반되는 법률행위의 효력을 부정하는 중요한 법원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고등법원은 사전동의권 조항은 투자자A에게 B회사의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고, 상환청구권 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투자자 A에게 투하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므로 주주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3.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사전동의권은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는 약정은 무효라고 본 원칙은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투자자 등 일부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여 다른 주주들과 차등적 취급하는 경우에도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르거나, 그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나아가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차등적 취급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려하야아 할 다양한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1) 차등적 취급의 구체적 내용 및 회사가 차등적 취급을 하게 된 경위와 목적, 2) 차등적 취급이 회사 및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였는지 여부와 정도, 3) 일부 주주에 대한 차등적 취급이 상법 등 관계 법령에 근거를 두었는지 아니면 상법 등의 강행법규와 저촉되거나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있는 주주로서의 본질적인 지위를 부정하는지 여부, 4) 일부 주주에게 회사의 경영참여 및 감독과 관련하여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 그 권한 부여로 회사의 기관이 가지는 의사결정 권한을 제한하여 종국적으로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등 차등적 취급에 따라 다른 주주가 입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4) 개별 주주가 처분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한 불이익을 입게 되는 주주의 동의 여부와 전반적인 동의율, 5) 그 밖에 회사의 상장 여부, 사업목적, 지배구조, 사업현황, 재무상태 등을 고려하여 일부 주주를 차등 취급하는 것이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차등적 취급이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관하여도 대법원은 소수주주인 투자자A에게 사전동의권이라는 우월적 권리를 부여하는 데 대주주인 C가 동의하였고, 투자자 A의 투자금은 B회사의 유동성 확보와 자본증가에 상당한 기여를 하여 주주 전체의 이익이 증진되었으며, 사전동의권 조항을 통하여 투자자 A에게 회사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경영 사항에 대한 감시ㆍ감독 목적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사전동의권 조항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투자자A가 가지는 조기상환청구권과 주식매수청구권, 위약벌 등의 손해배상에 관한 권리 역시 배당가능이익의 발생 등 상환 조건이 충족되거나 투자계약 등을 위반한 경우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를 투자 당시부터 특정 주주에게만 투자원금 반환을 약속하여 주주평등원칙에 반하는 경우와는 같이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4. 향후 투자계약 실무에 미칠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특정한 주주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차등적 취급이 주주평등 원칙에 반하여 무효라는 기존 원칙을 확인하면서, 나아가 투자자에게 부여되는 사전동의권 등 차등적 취급이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세부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이 위와 같이 차등적 취급과 관련된 다양한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투자자가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회사에 대하여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전 협의, 동의권 등을 확보하는 기존 투자계약 실무의 큰 방향은 향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에 위반되는 경우 회사나 대주주 등 투자계약상 이해관계인이 부담하는 위약벌 등의 제재도 기존 법리에 따라 신의칙 등에 반하는 과도한 액수로서 법원의 직권감액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원칙적으로는 유효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위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주식 그 자체에 특별한 권리가 부여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약정을 유효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투자계약 실무상 투자자가 회사 주식을 제3자에게 양도하는 경우 투자자가 투자계약에 따라 가지는 사전동의권 등이 제3자에게도 승계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향후 그와 같은 약정이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경우 주식 그 자체에 내재하는 특별한 권리라고 평가되어 주주평등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아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신주발행은 이사회 결의사항이므로 이에 대하여 사전 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이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한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는 이에 대하여 투자자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언제나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상법에 따르면 자본금 10억원 미만으로서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회사는 이사회 결의사항이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대체되어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위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이에 향후 투자자 및 투자를 받는 회사 모두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동의권이 유효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각 회사의 상황과 투자계약의 내용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 신중한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